월산사(月山祠)는 1752년 영조(英祖 2년) 이천서씨(利川徐氏) 후손들에 의해 구거지인 반월산(현재 대치마을 뒷산)의 서쪽 기슭에 창건하여 고려 고종(1214~1259)조에 시중을 지낸 절효 서릉(徐棱)을 주향으로 창건하여 9대손인 사암 서식, 사암의 현손이며 예조참의에 이르렀으나 무오사화(1498) 때 낙향하여 연산하에서 향민을 교화하였던 정암 서숭로(徐崇老, 1422~?)를 배향하였다.
그러나 오랜 풍우로 인해 훼손되자 1829년(순조 29)에 현재의 반월산 남쪽 기슭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그 후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46년에 복설한 것이다.
사우의 본 건물은 정면 3칸(间) 측면 2칸(间) 맞배지붕이며 건물 좌측에는 근년에 세운 〈월산사유허비〉와 삼문. 그리고 제실인 모사재(서진영(1688~1744)는 제 서진갑에 의해 건립)가 있다.
서숭로
병조참의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무신. 자는 대수(大寿)이고, 호는 정암(正岩)이다. 가품이 청수(淸秀)하고 무예도 뛰어났다. 1460년(세조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67년(세조 13)에 길주(吉州)의 호족 이시애(李施爱)가 난을 일으키니, 한성부참군(汉城府参军)으로 호조판서(户曹判书) 조석문(曺锡文)과 내금위(内禁卫) 어유소(鱼有沼)와 함께 함경북도 북청(北靑) 만영(蔓岭)에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그는 병조참의(兵曹参议)에 승직되었으나 녹훈(录勋)되지는 못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신진 사림파가 화를 입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전라남도 무안(务安) 연징산(渊澄山) 아래에 은거(隐居)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여 문풍을 진작시켰다. 그의 사후 병조판서(兵曹判书)에 추증(追赠)되고 월산사(月山祠)에 배향되었다.